좌기청
좌기청은 부창의 관원들이 곡물을 보관·관리하며, 출납 업무를 수행하던 중요한 집무처였습니다. 1618년, 부사 윤민일에 의해 처음 6칸 규모로 건립된 이 좌기청은 19세기 후반까지 운영되며 국가의 식량 지원과 구호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발굴 조사 결과, 좌기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4층 1호 건물 터로 추정되며, 전통 목조건축의 요소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툇마루가 확인된 이 건물은 적심 간격 2,400㎜의 두리기둥이 자연석 주춧돌 위에 배치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홑처마의 소로수장집 형태와 4분합 띠살문이 달린 창호 사용은 당시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나타냅니다. 좌기청은 단순한 곡물 창고를 넘어, 흉년이나 자연재해 시 무료 식량 제공과 환곡 대여를 통해 농사 불능의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중요한 구호 기관이었습니다. 빈민 지원을 위한 무료 배식소 운영으로 사회 안정에도 기여하며, 국가의 곡물을 필요한 지역으로 적절히 분배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처럼 좌기청은 역사 속에서 사회 안정과 구호 활동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담장지
담장지는 중상류 주택이나 궁궐에서 사용된 벽돌담의 한 유형으로, 단순한 경계를 넘어 건축미를 더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기본적인 구조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담으로, 주택에서는 주로 검은 회색 벽돌을, 궁궐에서는 붉은 벽돌, 즉 별돌을 사용하여 그 품격을 더했습니다. 위쪽 면은 암키와와 수키와로 지붕을 형성하고, 처마에는 막새기를 사용하여 세련된 외관을 완성했습니다. 때로는 수키와에 아귀토를 추가해 독특한 미적 효과를 노리기도 합니다. 또한, 영롱담이라는 변형된 형태는 벽돌 일부를 제거해 구멍을 낸 디자인으로, ‘십’자나 반달 모양의 구멍이 돋보입니다. 이처럼 담장지는 건축물의 외벽 또는 경계를 이루며, 보안과 구획은 물론 건축물의 성격에 맞는 다양한 스타일을 구현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우물
우물은 3층문화층과 4층문화층 각각에서 독특한 형태로 존재하며, 생활용수 공급과 건물 내 다양한 생활시설의 역할을 했습니다. 3층문화층의 우물은 원형 구조로, 내부 지름은 약 85cm에 불과한 작은 규모였습니다. 땅을 파낸 후 작은 깬돌을 시계방향으로 돌러쌓아 만들어졌으며, 우물 바닥은 약 210cm 지점에서 확인됩니다. 이 바닥은 원래의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18세기 중엽부터 일제 강점기,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다가 폐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4층문화층에는 1호 건지 북서편에 3기가 가까운 우물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중 1호와 2호 우물은 원형 구조를 띠고, 3호 우물은 사각형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1호 우물의 상부와 2호 우물의 하부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2호 우물은 폐쇄되고 보다 깨끗한 물 공급을 위해 새로운 1호 우물이 설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물은 시대별 물 공급 방식과 관리 체계를 반영하며, 주민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